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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인생" 김명제 "휠체어테니스서 유망주 이상이 되도록 하겠다"
등록일 : 2018-10-12조회수 : 107

 

 

 "패럴림픽 메달 따고 잠실구장서 시구하는 것이 마지막 꿈"

 "잘못한 것 잘 알고 있습니다, 열심히 할테니 격려 한 번씩 해주세요"

 

 미래가 유망하던 야구 선수는 교통사고로 크게 다쳤다. 걸출한 투수가 되고 싶은 꿈도 접어야했고, 괴로움에 한동안 밖에도 나가지 않았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일어서려는 그는 휠체어테니스와 연을 맺었고, 태극마크를 달고 장애인 아시안게임에 나서 은메달을 땄다.

 

 전 두산 베어스 투수였던 김명제(31·OSG주식회사) 이야기다. 

 

 김명제는 김규성(55·한샘 직장운동부)과 조를 이뤄 나선 2018 인도네시아 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 휠체어테니스 쿼드 복식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명제-김규성은 11일 오전(한국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클럽 클라파 가딩 테니스코트에서 열린 2018 인도네시아 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 휠체어테니스 쿼드 복식 결승에서 일본의 모로이시 미쓰테루-스게노 고지 조에 0-2(4-6 3-6)로 졌다.

 

 김명제는 야구 선수로 이루지 못했던 태극마크, 국제종합대회 메달의 꿈을 휠체어테니스 선수로 이뤘다. 

 

 은메달을 딴 후 김명제는 "처음으로 출전하는 아시안게임이었는데 결승에서 져서 아쉽다. 고등학교 시절 이후 국제대회를 처음 나왔다. 야구 선수로 못 갔던 아시안게임을 다른 종목으로 오게 돼 영광"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현재 프로야구 선수로 뛰고 있는 친구들이 '메달을 따오라'며 응원해줬다. 메달을 따서 응원에 조금 보답은 한 것 같다"고 전했다. 

 

 촉망받던 투수였다. 휘문고를 졸업하고 2005년 두산에 1차 지명을 받은 김명제는 당시 6억원이라는 고액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했다.

 

 입단 첫 해부터 프로야구 1군 무대를 밟은 김명제는 28경기에서 7승 6패 평균자책점 4.63을 기록하며 신인왕 후보로도 거론됐다. 2009년까지 1군 무대에서 통산 137경기에 등판해 479이닝을 던지며 22승 29패 1세이브 7홀드 평균자책점 4.81의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2009년 12월 28일의 일이 김명제의 인생을 바꿔 놨다. 그의 나이 23세 때 일이다. 그는 날짜도 잊지 않는다. 음주운전을 하다 다리에서 차량이 추락하는 사고를 겪어 생사의 갈림길을 오갔다. 경추 골절상을 입은 김명제는 12시간이 넘는 대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팔과 다리를 사용할 수 없는 장애를 가지게 됐다. 

 

 김명제는 혹독한 재활을 통해 걸을 수 있게 됐다. 김명제는 일상생활을 할 때 휠체어를 타지 않고 걸어다닌다. 다리를 절룩거릴 뿐이다. 장애인 체육 관계자들은 경추 골절상을 입고 그렇게 걷게 된 것은 기적이나 다름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다시 야구 선수로 뛸 수는 없었다. 남들의 시선이 두려워 김명제는 바깥에 잘 나가지도 않았다. 체중은 130㎏까지 불었다. 

 

 그러다 "친구들, 가족들을 위해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부모님은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는 그를 향해 "뭐라도 해보라"고 계속 권유했다. 

 

 김명제는 2014년 1월 1일 김명제는 세 가지 목표를 세웠다. 김명제는 "살을 빼고, 직업을 구하고, 월급을 받아 부모님께 드리자는 목표였다"고 소개했다.

 

 다친 그에게 ‘야구 선수’라는 경력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헬스장을 다니고 살을 빼는 동시에 직업학교에서 기술을 배워 직장을 가지려고 했다. 하지만 우연히 헬스장에서 만난 휠체어펜싱 선수에게 휠체어테니스를 소개받았다. 취미로 시작했다가 선수까지 됐다.

 

 김명제는 "처음 사고를 냈을 때 가족과 전 소속팀이었던 두산에 죄송했다. 가족과 주변분들 덕분에 이렇게라도 뭔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다"며 "많이 힘들었지만 내가 만든 길이었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고 당시 심경을 떠올렸다. 

 

 휠체어테니스 선수로 뛰는 것을 모두가 반겼던 것은 아니었다.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했다. 고교 3학년이던 2004년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대표팀에서 친분을 쌓은 후 '절친'이 된 최정(31·SK 와이번스)은 그가 선수로 뛰는 것에 대해 걱정하기도 했다.

 

 김명제는 "(최)정이가 반대를 많이 했다. 일상생활을 할 때 휠체어를 안타고 다니는데 경기를 할 때는 타지 않나. 그런 모습이 언론을 통해 노출되면 사람들이 다리도 아예 못 쓰고, 걷지도 못하는 것처럼 볼까봐 걱정했다"고 전했다.

 

 아직도 그의 부모님은 경기 모습을 보면 속상한 마음을 가지기도 한다. 김명제는 "경기를 할 때 휠체어에 앉아있고, 붕대로 엄지손가락을 라켓에 고정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 주변 사람들이 '명제가 저렇게 몸이 안좋았나'라고 생각한다"며 "그럴 때마다 아직 부모님이 속상함을 느끼시는 것 같다"고 했다.

 

 주변에 걱정에도 운동선수 출신인 김명제의 성장 속도는 빨랐다. 처음에는 휠체어도 제대로 타지 못했다. "처음에는 경기용 휠체어로 남들 5바퀴 돌 때 한 바퀴를 겨우 돌았다"는 것이 김명제의 말이다. 그러나 시작한 지 4년 만에 국가대표로 뽑혔다.

 

 김명제는 "야구와 테니스가 공 크기가 비슷하고 방망이보다 라켓의 면이 넓기는 하다. 그런 면에서는 도움이 된다. 하지만 비슷하면서도 다르다"며 "기량이 빠르게 발전한다고 하는데 나는 만족이 안 된다. 올해부터 국제대회에 출전하는데 너무 부족한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태극마크를 달고 장애인 아시안게임에 나선 김명제는 첫 국제종합대회 출전에 메달까지 품에 안았다.  

 

"남은 인생에는 제가 조금 더 열심히 하고, 제 인생에서 열심히 하는 모습을 가족과 두산 팬, 친구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나의 길"이라는 김명제에게 이번 장애인 아시안게임은 '제2의 인생'의 시작이다. 

 

 김명제는 "2020년 도쿄 패럴림픽 출전에 도전하겠다. 국제테니스연맹(ITF) 세계랭킹 10위 내에 드는 것도 목표"라고 밝혔다.

 

 그는 "야구에서도 가능성이 많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여기서도 그러고 있다. 제2의 인생에서는 가능성만 많은 선수가 아니라 그 이상이 되도록 열심히 해보겠다"고 다짐했다.

 

 더 큰 꿈은 언젠가 패럴림픽 메달을 따고 자신의 옛 직장이었던 잠실구장 마운드에 서서 시구를 하는 것이다. 김명제는 "사고가 난 이후 인천 SK행복드림구장은 1년에 한 번 정도 갔다. 잠실구장은 가본 적이 없다. 첫 직업이고, 꿈이라 가지 못했다"며 "하고 있는 일을 열심히 하고, 더 잘하고 있다는 것을 보이고 나서 두산 팬 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을 하며 시구를 한 번 해보고 싶다"고 강조했다.

 

 아직도 그를 향해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들이 많다. 김명제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제가 잘못한 것을 잘 알고 있어요. 저에게 안 좋은 시선을 보내는 분들의 입장에서는 그런 시선을 보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일으킨 사고 때문에 더 큰 상처를 받은 분들도 있습니다. 그래도 주변 분들이 있기 때문에 너무 사람답지 못하게 사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열심히 할테니 조금이나마 격려 한 번씩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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